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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부●/경험.투자 사례

어두운 부동산…1호선 지하철에 등장한 ‘1억에 5채’ 전단지

어두운 부동산…1호선 지하철에 등장한 ‘1억에 5채’ 전단지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부동산 전단지가 퍼지고 있다. ‘1억이면 아파트 5채’, ‘월 18% 확정수익’, ‘실투자금 3000만원’ 따위의 문구가 굵은 글씨로 표시된 것들이다. 지하철 안이나 버스정류장, 전봇대 같이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장소에서 흔히 보인다. 전단지 하단부에는 어김없이 전화번호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어두운 부동산 시장의 전망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보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광고물을 ‘지라시’라고 통칭한다. 한때 아파트 미분양분을 홍보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최근엔 수익형 부동산이 주로 다뤄진다. 도시형생활주택, 오피스텔, 상가 등이다. 적은 돈으로도 분양을 받아서 임대를 놓으면 고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라시에는 해당 부동산이 정확히 어떤 유형인지, 어느 지역에 있는지 같은 결정적인 정보는 빠져있다.


[사진설명=지하철 1호선 객차 안에 부착된 광고지.]

이런 전단지, 믿어도 될까. 지하철 객차 안에 청테이프로 붙여 있던 A4용지 반절 크기의 전단지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실투자금 1억원을 들이면 아파트 5채를 분양받아서 매달 225만원씩 월세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보였다.

전화를 받은 남성은 일단 “어떻게 알고 전화하셨냐”며 묻더니 “자세한 사항은 문자메시지로 보내줄테니 확인해 보시라. 나중에 모델하우스 방문해 자세히 상담받으면 된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3분 뒤에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전단지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정보들이 나열돼 있었다. 포승국가산업단지(경기도 평택) 내에 들어서는 아파트로, 266세대 규모라고 밝히고 있었다. 전체 20층 중 2층까지 올라간 상태라고도 적혀 있다. 시행ㆍ시공ㆍ신탁사의 이름과 견본주택 위치도 나와 있었다. 

특히 ‘분양가는 8100만원.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고 보증금을 받으면 1채당 2000만원이 투자된다. 대출이자는 13만원이다’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사진설명=서울의 한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광고지.]

분양업계 관계자들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아파트는 도시형생활주택(도생)을 말한다. 한 분양업체 관계자는 “도생에 아파트란 명칭을 쓰는 게 위법이 아니어서 이렇게 적은 것”이라며 “분양이 어려울 것 같은 지역에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전단지에 나온 월임대료는 대출이자를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최근엔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까다로워 1인당 대출을 설명대로 받기가 힘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단지를 ‘미끼’에 비유했다. 일단 혹 할만한 내용으로 눈길을 끈 뒤 접근하게 만드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주로 소규모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의 잔여 가구를 소진하려는 시행사들이 전문 분양업체에 처리(?)를 맡긴다. 이들은 팀 단위로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프로젝트를 맡는데 이처럼 전단지나 현수막을 활용하는 방식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한다.

이런 전단지가 늘어나는 것은 앞으로의 주택시장 상황과 궤를 같이 한다. 11ㆍ3 대책과 각종 대출규제의 영향으로 당분간 주택시장에선 실수요자들 위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선 실수요자들의 청약 가능성이 커지면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 같은 소위 ‘플랜 B’로 분류되는 상품들은 관심이 떨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더불어 금융권에서 주택담보대출 조건(한도ㆍ금리)이 지금보다 까다로워지기 전에 투자자를 모집하려는 의도도 있다.

S분양대행업체 대표는 “주택 수요자들의 관망세가 분명해지면서 일단 아파트 분양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도생 같은 더 작은 상품들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더 나빠지기 전에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총력전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런 전단지를 뿌리는 사업장을 무턱대고 불량하다고 말할 순 없다”면서도 “통상 최상의 대출조건, 임대상황을 가정해서 홍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출 조건을 확인하고 현장도 직접 방문하는 등의 검토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